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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다해 연중 제33주일(11.13)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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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11-13 15:48 조회3,9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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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

 

오늘 강론은 예루살렘 성전 역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구약성경 탈출기에 보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습니다. 하느님은 계약의 징표로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모세에게 주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돌판을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민족의 보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광야의 여정을 지나 약속된 땅 가나안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까지 성막을 치고 계약의 궤에 십계명 돌판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런 천막으로 된 성막을 안타깝게 본 솔로몬 왕은 계약의 궤를 모실 돌로 된 성전을 기원전 957년 예루살렘에 짓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처음으로 돌로 제대로 지어진 성전은 이 후 수난의 역사를 이어가게 됩니다. 먼저 기원전 586년 바빌론 제국이 침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합니다. 이 파괴된 성전을 다시 복원한 것은 예수님 시대의 헤로데왕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도 기원후 70년 로마의 침공으로 다시 파괴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그 성전 파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인들은 그 후 2000년 동안 조국과 성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어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전은 재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성전 자리에는 이슬람 모스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은 지어질 때부터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성전이 있었던 역사보다 성전이 없었던 시기가 더 길었습니다. 성전이 세워져 자유롭게 하느님을 예배했던 기간보다 파괴된 성전을 보며 언젠가는 다시 성전을 짓겠다고 통한의 눈물을 삼키던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주 모시듯 모셨던 십계명 판이 들어있던 계약의 궤는 지금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행방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성전이 없어도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 살아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이 없으면 마치 죽을 것처럼 생각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십계명 판을 목숨보다 소중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고 아직 건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마음속에 살아있는 성전이 더 중요한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이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면서 배운 점은 예배할 수 있는 성전이 없어도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은 어디에서나 예배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 역사에서 이런 점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돈, 건강, 명예 이런 것들을 잃으면 인생의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고 자포자기하거나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으면 마치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그게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지면 마치 자기 민족이 멸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모세의 십계명 판이 없어지면 자기 민족의 운이 다한 줄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 없는 이천년을 보내고 난 뒤 자신들의 마음속에 하느님을 모시고 살고 있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어디든 언제든 하느님께서 우리의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라는 계약의 내용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뼈저리게 경험 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 건강, 명예 등을 잃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을 잃고, 생명의 의지를 잃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면 그게 진짜 죽음이요, 파괴요, 멸망입니다. 그것이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오늘 강론을 이런 예화로 마감하고자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한 유태인 랍비가 수용 되었습니다. 수용소의 식량이라는게 형편없어서 수용자들에게는 약간의 빵과 버터가 배급 되었는데 랍비는 버터를 먹지 않고 모아서 기도할 때 켜는 초를 밝히는데 사용 했습니다. 이걸 본 사람들이 랍비에게 허튼짓 하지 말고 버터를 먹으라고 말했지만 그는 늘 초를 밝히는데 버터를 사용 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랍비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랍비가 말했습니다. 버터가 없으면 배는 고프겠지만 기도 중에 하느님을 만나는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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