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가해 대림 제2주일(12.04)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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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12-04 14:19 조회4,193회본문
* 대림 제 2주일 가해
“부서진 껍질, 요한”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마리아가 임신한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요한은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뛰놀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배를 차던 그의 모습이 마치 알을 깨고 나오려는 한 마리 새 같았습니다. 요한은 세상에 태어나서도 세상이라는 알을 깨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는 광야에서 고독하게 살며 극기의 생활을 합니다.
요한은 사심을 떠나서 구도자(求道者)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었습니다. 구도자의 길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는 정화의 과정입니다. 그는 적막한 광야에서 메뚜기를 씹으며 자신을 직시하고, 또 세상을 직시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무슨 가면을 쓰고 있고, 세상은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세상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광야의 소리’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결국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이 돌들만도 못한 것들아, 너희들은 도끼에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이 외침은 사람들의 양심을 겹겹이 싸고 있는 위선의 껍질을 벗기려는 정화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면 결국 죽게 될 줄 알았지만 그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그런 희생 뒤에 누군가 오시는데, 그분이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위대한 분이 오실 것을 희망하며 먼저 죽임을 당합니다. 요한은 극기와 독설로써 사람들을 항복시켰으나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요한이 길을 닦고 모시려던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딱딱한 껍질을 깨야 부드러운 것이 나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할 한없이 부드러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요한이 살고 죽은 껍질 깨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합니다.
새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그 껍질 깨는 일은 새 생명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누군가 그 껍질을 대신 깨주면 그 새는 죽고 만답니다. 이 대림절에 우리는, 과연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자기 정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까?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며 자기 위선을 덮어두고, 세상의 아픈 소리를 외면하며 그냥 그렇게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스스로 껍질을 깨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는 그저 체면을 찾고, 소시민적 안정을 추구하며, 진실과의 대면은 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요한은 죽기 살기로 자기 자신과, 또한 일그러진 세상과 싸웠고, 마치 없어지기 위해 세상을 산 사람처럼 죽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곧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겠지만 그 부드러움의 탄생 옆에, 부서진 껍질 요한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