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해 연중 제6주일(02.12)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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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02-12 16:20 조회3,600회본문
연중 제6주일 – 사랑은 입법할 수 없다
저는 일본에 온 이후 지금까지 세 번 교통 딱지를 뗐습니다. 제가 일부러 위반하려고 한 건 아닌데 운전 초기에 일본 도로 사정에 익숙하지 않아서 세 번 모두 차선 위반으로 벌금도 내고 벌점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직 제 운전면허증은 골드로 못 넘어가고 블루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의 법은 이런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지켜야 할 것들을 법으로 규정하고 그 법을 위반하면 징역, 벌금, 사회봉사명령 등의 처벌을 내립니다. 이런 체계를 갖게 된 것은 우리 모두가 한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가 안전하고 공정하게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별 일이 없는 한 선량한 시민으로서 법을 성실히 지킵니다. 물론 처벌이 두려워 법을 잘 지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만 해도 혹시 벌점이 쌓여 면허정지를 당할까봐 신경써서 차선을 잘 지킵니다.
반면 우리가 믿는 종교의 법은 사회의 법과는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법 혹은 신법이라고 말하는 법 안에서의 처벌은 다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법을 실천하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받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사랑하지 않았다고 해서 징역 사신 분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용서하지 않았다고 해서 벌금 내신 분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분 계십니까? 아마도 우리 중에 그런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 받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입법할 수도 없고 처벌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처벌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법, 종교의 법을 실천하는 일을 게을리 하거나 등한시 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신자 분들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법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성을 다해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오히려 가톨릭 신자로서 성실하고 착하게 살지 못한 죄송한 마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삽니다. 그게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은 이런 가르침을 주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마치 사회법이 무서워 법을 지키는 바리사이들보다 너희는 하느님의 법을 더 잘 지켜야 한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법을 지키는 바리사이들보다 너희는 더 의로워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바리사이들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셔서 더 분발하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하느님 법을 잘 지키는 착한 신자가 되라는 뜻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지켜야 할 하느님의 법이 우리 인간 생활의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최소한의 인간 공동체의 기본에 관한 법칙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 공동체에는 윤리, 도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은 지금과 같은 구체적이고 현대적인 법이 생기기 이전부터 인간 사회에 존재하던 기본적인 규정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나오는 십계명은 종교적인 규정이전에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지켜야 하는 윤리였습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배워 온 인간 세계의 최소한의 규칙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예수님은 우리에게 바리사이들보다 더 의롭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새로운 윤리, 도덕을 가르쳐 주십니다. 화 내지 말아야 한다, 화해해야 한다, 마음 속으로 악한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등등. 이것 말고도 복음서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 생활의 기본에 관한 것입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서로 일치해야 한다,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등등.
우리가 이런 윤리, 도덕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의롭고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예수님은 강조하십니다. 사회법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지킬 때 우리 자신도 의로워지고 우리 공동체도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지 않았다고 해서, 친절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받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처벌이라는 법적인 제재 이전에 우리의 양심과 정의가 올바로 선다면 우리는 법 없이도 사는 의로운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법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