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동료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09.18)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노옥란빅토리아 작성일22-09-18 13:57 조회4,077회본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여러분 안녕 하셨습니까?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저는 지난 8월 한달 한국에 휴가를 다녀 왔습니다. 원래 2주 정도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일본으로 돌아 오기 전 PCR검사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부득이 자가격리를 해야했고, 9월 7일부터 PCR검사 없이 입국이 가능하다고 해서 거의 한 달만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너무 오래동안 자리를 비우고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3년 만에 방문한 고국이 참 많이 변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물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동료들, 친구들이 고맙고 반가웠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한국에 가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 오늘 강론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나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구분해서 알아들을 수 있으신지요? 22 2e e2 ee
못 알아 들으시겠다구요. 그러면 원어민 발음으로 들어 보시겠습니다. 그래도 구분이 안되신다구요. 경상도 분들은 잘 알아 들으시겠지만 아마 다른 지역 출신 분들은 구분이 잘 안되실 것입니다. 이것은 숫자 2와 영어 알파벳 E를 구분해서 발음하는 경상도 특유의 억양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경상도 사투리 얘기를 하려고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한국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이 얘기를 꺼냈습니다. 오늘은 한국 순교 성인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옛날 조선 땅에 하느님의 말씀이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18세기부터 북경을 오가던 조선의 사신들은 중국 북경에서 천주교 관련 서적들을 조선에 가져옵니다. 그렇게 가져 온 천주교 서적들을 당대의 실학자들은 함께 모여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 모임이 경기도 광주에 있는 천진암에서 열린 강학회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아 듣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공부했던 내용은 한문으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물론 당대의 학자들이 한문을 잘 알았기에 책의 내용을 잘 이해했을 것이라고 가정 하더라도 생전 듣도보도 못한 천주교의 교리를 선생님의 해설도 없이 책의 글자 만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천진암 강학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학자들 뿐 아니라 노비나 종처럼 일자무식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글도 몰랐던 그들이 하느님의 진리를 알아듣고, 예수님 복음의 참 뜻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들불처럼 번져간 천주교 신앙을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책을 통해서,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교리교사를 통해서 천주교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스스로 공부해서 깨우친 것도 아닌데 한국의 순교자들은 그저 듣고, 느끼고, 가슴에 새긴 천주교 신앙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잘 알아 들을 수도 없는 한자로 된 책을 설명해 주는 교리 교사들의 가르침을 이해 하고 그 안에 담긴 신앙의 진리와 인생의 참된 길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현대인들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입니다.
저는 앞서 재미 있으라고 사투리 얘기를 했습니다. 거기서도 느꼈지만 우리는 우리 말도 잘 못 알아 듣습니다. 같은 나라 사람이 같은 말을 하는데도 이해를 못합니다. 전 단지 사투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커뮤니케이션, 소통, 대화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한 가족, 한 공동체, 한 사회, 한 국가 안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의견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의 말도 듣지 않고, 무시하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아예 소통을 거부합니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입니다.
250년 전 우리나라에 전해진 복음 말씀은 중국어 한자였습니다. 당대의 학자들도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함께 모여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일자무식인 노비나 종들도 그것을 어깨 너머로 보고 귀동냥으로 들으며 하느님의 진리를 알아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깨달은 진리를 전해 주었고 그 진리를 들었을 때 이미 그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지금의 우리는 잘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좋은 책이 있고, 좋은 교리교사가 있고, 원하면 이스라엘이든 바티칸이든 가서 직접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잘 못 알아 듣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 들었다면 세상은 분명 이것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말도 못 알아 듣는데 어떻게 하느님 진리의 메시지를 알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성인들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특별히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하느님의 진리를 조금 더 잘 알아 들을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반성을 해 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