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가해 대림 제3주일(12.11)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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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12-11 15:58 조회4,664회본문
대림 제3주일 – 요한의 의심
오랜만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사오정 시리즈 아시죠? 남의 말 잘 안 듣고 엉뚱한 소리 잘 하는 사오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저팔계가 목욕탕에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팔계에게 사오정이 물었습니다. “저팔계 어디 가니? 목욕탕” 저팔계의 말을 잘못들은 사오정은 다시 물었습니다. “저팔계 어디 간다고?” 저팔계는 짜증을 내며 “목욕탕 간다니까” 그러자 사오정이 하는말 “아~~ 난 또 목욕탕 가는 줄 알고”
오늘 복음 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은 사오정 정도는 아니지만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례자 요한의 태도가 180도 확 바뀌어 버렸습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시고 성령과 불로 우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요한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헤로데에게 체포된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지난 주에 보였던 확신과 자신감은 사라지고 소심하게 우려 섞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담대하고 자신만만했던 요한은 어디가고 엉뚱하게 주저하고 흔들립니다. 세례자 요한이 의심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요한은 왜 이리 바뀐 것일까요? 그리고 그런 요한의 모습을 통해 복음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우리는 평소에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을 할 때는 굳이 하느님을 의심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때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라는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나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일부러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을 의심합니다. 우리 가정에 위기가 생겨 가족들이 서로를 믿지 못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부패와 폭력 앞에 나약해 지는 나를 볼 때, 병고에 시달리던 목숨이 허무하게 스러져 갈 때, 불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허물어져 갈 때. 우리가 믿는 사랑과 평화, 생명과 정의의 하느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가? 하고 반문하며 의심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느님은 왜 그저 이런 일을 바라만 보고 계신가?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손을 펼치시어 그분의 위대한 초능력을 조금만 사용하신다면 우리 인간 세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텐데.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약하고 우리의 의심은 갈수록 깊어져 그 의미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을 의심하고 따지고 대들고 반항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대답 좀 해보시라고, 전능하신 분이라면 뭐라도 해보시라고 생떼를 씁니다. 그런 우리의 몸부림에 사실 하느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으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었던 요한에게, 그리고 오늘날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은 예상외로 화내지 않으시고 자상한 대답을 들려주십니다. 오히려 의심을 품는 요한을 그 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고 칭찬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에서 요한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반응을 보며 많은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요한의 엉뚱한 질문을 받으셨을 때 요한을 꾸짖거나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예수님은 요한을 받아들이시고 진리로 인도하려 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주변에 있는 좋은 것들을 보고 들으라고 요청합니다. 눈먼 이들이 다시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듣고,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것을 보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이미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대하고 선하고 정의롭고 기적 같은 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의심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응답은 우리의 의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업적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라고 초대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눈여겨보았으면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답과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심에 흔들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질문에 불쾌해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미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의 선하신 업적을 잘 보고 깨달을 수 있느냐 아니냐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미 우리 안에서 좋은 일을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업적들을 잘 보고, 느끼고, 경험하여 우리의 의심을 떨쳐버렸으면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