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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가해 부활 제3주일(04.23)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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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04-23 14:32 조회3,3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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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3주일 가해

 

 

길에서 만난 희망

 

흔히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들 말합니다.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20대의 길을 가고 있고, 누구는 30, 40, 50... 어떤 분들의 인생길은 거의 끝나가기도 합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가다 보면 즐거운 일들도 만나지만, 절망스럽고도 허무한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고, 그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곤 합니다. 그리하여 친구나, 연인이나, 배우자, 가족 등 동반자가 생기지만 그래도 채울 수 없는 어떤 공허감, 즉 나그네 설움은 계속됩니다.

 

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그 두 제자는 절망 속에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허무한 세상 길을 가던 그들에게 슈퍼스타처럼 다가왔던 예수님이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선함과 사랑의 힘에 기대를 걸었었건만, 그것 역시 인생길에 잠시 낭만적이고 부질없는 기대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믿고 따랐던 사랑의 예수님이 너무나 힘없이, 너무나 비참하게 피투성이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그 소문은 그들의 절망을 없앨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그저 소문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처참(悽慘)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다시 실망할까 두려워 그들은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 하지도 않고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한 나그네가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갑니다. 절망에 눈이 가려진 그들은 그 나그네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성경말씀을 요약하여 설명해 줍니다. 성경말씀의 요지를 일목요연하게 꿰뚫고 있는 그 낯선 나그네에게 제자들은 호감이 생깁니다. 그들은 그 매력적인 나그네에게 저녁식사도 같이하고 하룻밤 함께 묵어갈 것을 제의합니다. 그 나그네가 저녁식사를 같이하며 빵을 떼어줄 때, 제자들은 갑자기 눈이 열려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됩니다. 절망의 길에서 결정적인 희망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만난 그 희망은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는, 죽음도 이기는 희망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인생 나그네 길은 끝이 없는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이 끝나기 전에 우리도 확실한 희망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 제자들이 걸어간 길을 우리도 걸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은 절망으로 시작되는 길입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사사로운 정을 위해서 만났던 예수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도 부활한 예수님을 위해 하룻밤을 내놓을 수 있는 희망의 불씨는 남겨 놓아야 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절망은 안 됩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단순하지만 힘 있는 예수님의 그 언어를 알아들을 줄 알아야 희망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빵을 떼어주는 일상의 행위 안에 담겨있는 진리의 메시지, 즉 내 생명을 나누는 것이 죽음을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오해받고, 배신당하고, 상처입고, 돌아가셨지만 그것이 죽음을 이기는 길이었듯이,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온갖 오해와 배신과 상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인생길의 절망 속에서도 쉬어갈 줄 알며, 일상 안에 숨어있는 진리를 발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끝과 함께 찾아온 봄입니다. 우리는 많이 힘들었는데 무심하게도 나뭇가지를 찢고 터져 나오는 노란 꽃, 하얀 꽃, 분홍 꽃을 봅니다. 여러분은 이 봄 안에, 잔인한 사월을 이기고, 코로나를 이기고, 살아갈 희망으로 다가오는 하느님이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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