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해 사순 제5주일(03.26)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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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03-26 14:49 조회3,761회본문
* 사순 제 5주일 가해
“비무장(非武裝)의 하느님”
예수님은 오늘 죽은 사람을 살려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때나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그런 분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술사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 오실 때, 가난한 시골 처녀 마리아의 뱃속을 통해 갓난아기로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즉 비무장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똑같이 땀 흘리고, 배고프고, 눈물 흘리는 참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타니아라는 마을에 특별히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라자로와 마르타와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은 나그네 삶을 사셨지만 그래도 가끔 찾아가 쉬셨던 정든 집, 정든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중한 친구 라자로가 병으로 죽자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의 그 눈물은 당신 친구를 잃어버린 아픔이기도 하고, 오빠를 잃어버리고 슬퍼해야 하는 평범한 인간 삶에 동참하시는 하느님의 슬픔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완전한 일치를 통해 사람들을 꿰뚫어 보고, 치유하고, 살려낼 수 있는 능력까지 있었지만, 그 능력을 남용하거나 과시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느님께 대한 영광이 드러날 때만 그 능력을 행사하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오늘, 믿음이 강한 두 자매와 그 이웃들을 위해 생사(生死)의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기적이 이루어지기까지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는 엄청난 모험과, 인간이 된 하느님이 겪으신 삶의 희로애락, 그리하여 생겨난 하느님과 인간과의 우정과 사랑이 전제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시는 예수님이 우리 인간과도 사랑으로 일치하실 때,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의 능력이 인간에게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비무장의 하느님, 인간 예수님은 이런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써 우리 인간 안에 내재(內在)된 사랑의 힘을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는 땀 흘리고, 배고프고, 눈물 흘려야 하는 나약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혼신을 다하여 섬기고, 벗을 위해 목숨 바치시는 예수님과 친구 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줄 안다면, 우리에게도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의 힘이 '사랑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죽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죽지 않는 것입니다. 기적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실 예수님은 육체적 생명을 연장시키러 오신 분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그런 웰빙(well being)을 가르치러 오신 분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 그분은, 사랑을 위해서는 거친 삶을 살아야 하고, 죽음이라는 이별을 꼭 만나야 하는 비통한 우리 인생이지만 사랑하였다면 행복한 것이고, 목숨 다하도록 사랑하면 그 사랑이 우리를 영원한 시간 속으로 데려다준다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치러 오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