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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가해 부활 제6주일(05.14)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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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05-14 15:04 조회3,7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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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6주일 가해

 

 

창조적(創造的)인 이별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별예고를 하십니다. 다음 주일이 예수님이 우리 곁을 떠나시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사랑하며 살다 죽고 부활하심으로써 사랑 충만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우쳐주셨으며, 우리에게 이별을 준비시키신 다음 승천하셔서는 마음속의 협조자로 우리가 계속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적인 부재(不在)’를 가르쳐주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동물에 관한 다큐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거기서도 보면, 어느 정도 자란 새끼는 제 어미를 자연스럽게 떠나고, 그렇게 떠날 때 비로소 성숙해집니다. 그에 비해 우리 인간들은 정()에 치우쳐서,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려 욕심내고, 자녀는 부모와 끝까지 함께 있을 줄로 여기고 이별 준비를 전혀 하지 않다가, 정작 이별이 닥치면 크게 당황하며 미성숙한 이별을 합니다.

 

요즘, 주변 어르신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십니다. 생로병사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삶에 있어 이별은 작은 죽음이고, 죽음은 큰 이별입니다. 항상, 이별과 그 이후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떠나는 그분들을 잘 보내드려야 하겠고, 우리가 떠날 때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잘 만들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고아가 되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아픔만 남게 되는 그런 이별이 아니라, 이별함으로써 서로의 마음을 사랑으로 차지하게 되는 창조적인 이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창조적인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14,18-19)

 

 

강론을 마치며 이별을 생각하게 하는 시 한 편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품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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