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09.17) 고찬근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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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09-17 15:39 조회3,424회본문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자발적인 신앙”
약 오백 년 전에 스페인에서 일본까지 와서 예수님을 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덕분에, 우리는 지금 천주교 신자이고 저는 사제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이 성령의 인도로 일본에 선교하러 오셨고, 중국 선교까지 희망하셨지만 병으로 돌아가시고, 마태오 릿치 신부님 등 그분의 후배들이 중국 선교를 이루어냈습니다. 그 중국에서 우리나라 천주교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는 과정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좀 특이합니다. 즉 다른 나라는 선교사가 들어가서 가르치고 전했지만,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서 자발적으로 교리를 연구했고, 선교사를 모셔왔습니다. 천 육백년대 초에 이미 천주실의(天主實義)라는 교리서를 이수광(李晬光)이라는 학자가 중국에서 가져다가 소개하였고, 천 칠백년대 중반에는 홍유한(洪儒漢)이라는 학자가 천주실의와 칠극(七克)이라는 책을 공부한 후, 스스로 산골로 들어가 천주교 계명을 지키며 기도와 묵상으로 평생을 지냈다고 합니다.
그 뒤 경기도 주어사(走魚寺)의 강학(講學)이라는 모임이 천주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때가 무르익자, 사신(使臣)으로 중국에 가게 된 이승훈(李承薰)이, 신앙 선각자 이벽(李檗)의 청으로 북경의 북당(北堂)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온 1784년 한국 천주교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로 점차 교세를 넓혀가던 한국 천주교는 네 번의 큰 박해를 당합니다.
1801년, 강완숙 여회장, 정약종 회장 등 초창기 우리 교회를 이끌어 가던 멤버들이 대거 순교한 신유박해(辛酉迫害), 1839년, 성직자 영입 운동을 하면서 교황청에 편지까지 보냈던 정하상 최초 신학생, 샤스탕신부, 모방신부, 앵베르 주교님 등이 순교한 기해박해(己亥迫害), 1846년,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한 병오박해(丙午迫害), 1866년, 외세배척 정책까지 보태져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병인박해(丙寅迫害) 등 큰 박해를 겪으면서 만 명이 넘는 순교자가 피를 흘렸습니다.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땅 위에, 오늘날 우리 한국 천주교는 우뚝 서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예입니다. 순교자들의 희생과 기도 덕인지 우리 한국 천주교는 지금 세계의 주목을 받는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교세확장 측면에서도, 선교역량에 있어서도 세계 어느 교회보다 역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교황님의 기대가 크십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바라셨던 선교의 마지막 자리라고 여겨지는, 중국과 일본선교를 한국교회가 감당해주기를 교황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특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교회를 많이 칭찬해주십니다. 지나간 시성식, 시복식,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이미 한국을 찾아주셨고, 다음으로는 2027년 세계 청년대회 때 한국에 또 오실 겁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국의 모든 순교자를 기억하고 감사의 정을 드리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부디 우리가 피의 순교는 아닐지라도, 조금 더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또한, 귀하게 물려받은 우리 신앙이 선교 열정으로 불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현세 기복적(祈福的)인 이 일본 땅에, 물질주의의 새로운 맹주(盟主)로 자리 잡고자 여념이 없는 저 중국 땅에,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이 계시고, 영원한 삶이 있고, 희생과 봉사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그들도 깨닫게 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