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금요일(03.29)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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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3-30 09:30 조회1,957회본문
* 주님 수난 성금요일
“우리를 살리는 죽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그 영화를 끝까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이 너무나 끔찍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차마 계속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실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더 비참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보통 십자고상을 바라보면 예수님 그분의 고통, 절규, 구멍 뚫린 손과 발. 이런 것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동정하기도 하고, 우리 잘못에 대해 죄스러움도 느끼고, 또한 그분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세상의 죄에 대해 혐오감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런 감정만 갖는다면 예수님은 무척 실망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우리 죄의 죽음이고, 죽음으로 끝나는 죽음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당신의 죄로 삼으시고, 그것을 받아 안고 죽음의 강에 스스로 몸을 던지신 것입니다. 논개처럼 죄를 품에 안고 당신을 죽임으로써 그 죄도 함께 죽이셨습니다.
오직, 잘먹고 잘살기 위해 의인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군중의 죄, 스승도 팔아넘기고 자기도 죽일 만큼 교만한 유다의 죄, 권력에 눈이 먼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 남의 나라를 빼앗은 욕심 많은 로마 총독의 죄,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는 군인들의 죄, 이 모든 죄를 당신 품에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의 죄는 어디선가 용서받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인인 우리끼리는 그 죄를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그 용서 받을 길 없는 세상의 죄를 모두 용서하시기 위해,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이사야 53, 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예수님의 용기를 보고, 죄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에 환호하고, 우리에게 남겨주신 새로운 삶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이것을 꼭 마음에 새깁시다.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죄의 죽음이고, 예수님의 죽음은 내가 다시 살아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또한, 나아가서 예수님 죽음의 원인은 우리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와 죽음의 십자가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슬픔과 절망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의 십자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그분이 땅속에 묻히신 적막한 밤이 왔습니다. 군중과 이스라엘 지도자는 그 위험하고도 골치 아픈, 예수라는 작자가 죽었으니 속 시원하다며 잠자리에 듭니다. 빌라도 총독도 고요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일이 잘 마무리 되었다고 안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릅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한 것인지, 내일모레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들이 자기 죄를 알기도 전에 벌써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