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사순 제1주일(02.18)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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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2-18 15:13 조회2,201회본문
* 사순 제 1주일 나해
“유혹(誘惑)”
오늘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유혹을 이기는 훈련이 꼭 필요했나 봅니다. 신의 아들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 인간 세상에 오셨지만, 신성(神性)을 지닌 분이셨기에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유혹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알고도 함께하고, 십자가를 지는 일이 꼭 필요했는데, 당신의 전지전능(全知全能)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위조절, 눈높이 훈련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유혹을 받으며 사십니까? 어떤 유혹을 받으며 사십니까? 쾌락입니까? 편리입니까? 사치입니까? 과대평가입니까? 아니면, 미움입니까? 무관심입니까? 포기입니까? 절망입니까? 유혹이라는 말의 사전 뜻을 보면,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끎.'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며 삽니다. 그리고 이웃도 평화롭고 이 지구환경도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자신도 이웃도 환경도 망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신이 혼미하여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괜찮으리라, 좋으리라 생각한 것들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편리한 것이 좋지, 이 정도는 소유하는 것이 안전하지, 그래도 인정받고 대우받으며 사니까 기분이 좋네? 이웃의 아픔은 사회 시스템이 내가 낸 세금으로 잘 돌보고 있겠지, 이 정도의 음식 쓰레기와 일회용품으로 이 큰 지구가 오염되겠어? 내가 버린 것을 누가 알겠어?
유혹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판단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나의 작은 선행이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바다에 물방울 한 방울을 보탠 것은 분명합니다."라고 성녀 마더 테레사가 말씀하셨듯이, 반대로, 나의 작은 욕심과 사치와 낭비가 그리고 무관심과 무지(無知)가 분명히 이웃을 피눈물 흘리게 하고, 이 큰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라고 각성(覺醒)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작든 크든 올바르게 판단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교우 여러분, 작지만 큰 유혹이 편리함에 대한 유혹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은 편리함은 더 큰 편리함을 부르는 속성이 있습니다. 편리함의 결과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우리 체력을 약하게 하고, 편리한 음식물들이 건강을 해치고, 편리한 통신수단으로 마음을 전하기는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편리한 첨단 기술들이 전쟁에서는 사람을 쉽게 해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편리해 보이지만, 괜찮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을 올바로 알고, 안 좋은 결과를 미리 막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목숨 바치는 십자가를 지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삶 속에서 불편함이라는 작은 십자가는 질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편하려고 하면 모두가 불편해집니다. 누군가 불편하면 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가 불편하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역설을 깨달을 수는 없겠습니까? 이제는 바야흐로 '불편하게 살자'는 슬로건(slogan)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