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연중 제31주일(11.03)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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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11-03 14:33 조회183회본문
* 연중 제 31주일 나해
“질적(質的)인 두 계명(誡命)”
메타인지(meta認知, metacogni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올바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잘 아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진 것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만 소유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해야 할 것은 '아니오' 하면 되고, 해야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타인지적(meta認知的)인 사고와 행동을 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처럼, 그 복잡한 율법의 계명들을 바로 두 가지로 정리하시니 말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우리의 주인(主人) 창조주를 사랑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은 가난하지만 단순하게 사셨습니다. 오직 하느님 사랑을 전하시느라고 많은 것을 공부할 시간도, 돈을 벌 시간도, 미워할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그 '가난함과 단순성'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을 전할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걱정이 많고 바쁘고,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율법은 정말 복잡했습니다. 십계명에서 비롯된 율법조항이 613조항이고, 그것을 위한 금지조항은 365조항, 실천조항은 248조항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율법조항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두 계명뿐이라고 예수님은 오늘 거침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조항에다 많은 세부조항까지 만들어가며 율법으로 먹고살던 율법교사들은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단순해 보이는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앞에 무척 어려운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냥 대충대충 시간 날 때, 일주일에 한 번 성당 가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heart)을 다하고, 우리 목숨(soul)을 다하고, 우리 정신(mind)을 다하고, 우리 힘(strength)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즉 자나 깨나, 어디서나, 죽도록 하느님께 사랑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의 일이라 무심하게 동정하듯이 이웃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알뜰하게 자기 몸과 자기 가족을 챙기듯이 '너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남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삼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명령하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두 계명은 우리가 평생, 깨어서 노력해야 하는 정말 큰 계명입니다. 양적(量的)으로가 아니라 질적(質的)으로 지키기 힘든 계명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