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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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해욱프란치스코 작성일13-11-09 11:30 조회9,296회본문
(21) 르네상스 시기 교회 문헌에 나타난 성모님의 모습 : 개신교가 바라보는 성모공경과 연옥
마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의 성모님에 대한 생각을 살펴본다. 근대는 유럽이 새로운 국면을 맞은 시기로, 인문주의와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웠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성모님을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상으로 그렸다. 중세 모든 철학이 신에 대해 집중했다면 인본주의는 사람에 대해 집중했다. 인본주의자들은 마리아 신심과 성인 공경을 미신행위로 여겼다. 여기에 마틴 루터와 칼빈 등 종교 개혁자들이 가세했다.
영국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을 중심으로 하는 옥스퍼드 운동은 성모 신심에 큰 영향을 줬다. 옥스퍼드 운동(1833~1845)은 옥스퍼드대학교 젊은 교수들이 가톨릭 전통을 회복함으로써 영국 국교회를 쇄신하고자 한 운동으로, 이 운동을 통해 교회 내부적으로 수도원 부활 등 가톨릭 전통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가시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1854년 '원죄 없으신 마리아 잉태' 교의가 선포되고, 1950년 마리아 승천에 대한 교의가 선포되는 배경이 됐다.
에라스무스라는 학자는 성모 신심이 미신에 가까운 행위라고 비판했다. 진정한 종교 신심도 아니고 윤리적 내용도 결여된 겉치레식 신심이라는 것이다.
마틴 루터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으로 나뉜다. 정신적 병약자라고 하는 이도 있고, 경건한 신앙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는 기도하고 고행하는 수도자 모습을 보여줬다. 그에게 하느님은 무서운 하느님이다. 루터가 세운 교회의 핵심 슬로건은 '믿음만으로, 은총만으로, 성경만으로'다. 가톨릭교회 믿음은 행실로 보여주는 것이다.
개신교는 성모 공경을 반대하지만 루터가 처음부터 성모 공경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 일본인이 쓴 「루터와 마리아」를 보면 루터가 성모님 찬미가(마니피캇)에 대해 해설한 부분도 있고, 그가 가톨릭을 떠나기 전 성모님에 대해 강론한 것도 찾을 수 있다.
마틴 루터의 성모 공경
그는 성모 마리아의 완전한 동정성을 받아들였고, 마리아가 충만한 은총을 지녔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전적으로 성모 마리아의 덕성이 아닌 하느님 은총이라고 생각했다. 개신교 신자들은 우리도 은총을 받으면 성모님처럼 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루터는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에게 마리아에게 중재기도를 할 것을 권유했고, 자신의 교회에서 예수 탄생 예고 축일을 지내길 원했다. 루터는 에페소공의회가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라고 결정한 것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이 공의회는 신앙에 어떤 새로운 것을 정한 것이 아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앙은 이미 처음부터 교회 안에 있었다. 복음과 성경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에도 상당히 접근해 있었다. "마리아는 출산 전, 출산 중, 출산 후에도 온전히 정결한 동정녀였다. 마리아는 원죄로부터 구원된 정결하고도 거룩한 처녀다. 하느님의 선물로 꾸며진 그의 영혼은 원죄로부터 정결하다."
그는 성모승천대축일 강론에서 "마리아는 교회 어머니요, 교회 원형이다. 교회 구성원일 뿐 아니라 구원 사명을 부여받은 교회 대표다. 마리아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다"라고 했다.
개신교가 가톨릭과 다른 점은 연옥에 관한 관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루터의 95개 조항에는 대사(大赦) 논쟁이 있는데, 이는 개신교에서 '면죄부'로 잘못 알려져 있다. 대사는 고해성사의 사죄 교리와 연옥에 대한 교리, 통공의 교리가 서로 맞물린 상태에서 베풀어지는 것이다.
고해성사로 죄의 사함을 받지만 죄에 대한 대가는 보속을 통해 치른다. 그러나 보속의 효력은 전적으로 보속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죄가 고해성사를 통해 사해져도 남은 보속은 연옥에 가서 치르게 된다.
개신교, 연옥 인정하지 않아
우리는 연옥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과 기도의 공로를 다른 영혼을 위해 돌릴 수 있다는 교리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교회가 전ㆍ한대사를 베풀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개신교는 연옥을 인정하지 않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없다. 연옥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아픔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을 기쁘게 만나기 위한 정화 과정이기도 하다. 지옥이 하느님과 결별을 의미한다면, 연옥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사랑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0년 10월 3일, 정리=이지혜 기자]
(22) 르네상스 시기 종교개혁 주장론자들의 성모 신심 : 올바른 성모신심 세우기 노력
18세기 유럽은 인간 지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지성주의와 계몽주의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 당시에도 다른 시대와 마찬가지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지나치게 강조한 이들이 있었고, 이를 우상 숭배라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대다수 계몽주의자들은 성모 신심을 이성적 균형이 결여된 행위라고 규정하고, 그리스도교 본질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시기에 마리아론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많은 지역의 기도서들에서 마리아 축제들은 예수 탄생 예고 축일, 주님봉헌 축일, 방문 축일, 승천 축일 정도만 남고 삭제됐다. 또 계몽주의자들은 성모송을 경시하고, 묵주기도는 쓸데없는 반복기도라고 혹평했다.
이뿐 아니라 일부 주교들은 스카풀라와 묵주를 제거하도록 명하고, 성모 신심 서적 발행을 금지시켰다. 당시 스카풀라와 묵주를 자신을 악에서 구해주는 부적처럼 여기는 이가 많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성모 신심에서 미신적 요소가 제거되는 것까지는 긍정적 비판으로 볼 수 있지만 신심 자체가 전부 무시되는 일은 온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시대 성모 신심을 주도했던 몇몇 인물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성모 신심의 대가인 성 루이 몽포르는 레지오 마리애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계몽주의자들이 성모 신심을 반대하는 것에 저항하며 올바른 성모 신심을 전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가 창설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펴낸 「성모님에 대한 참된 신심」이라는 책은 현재 레지오 단원 필독서로 읽히고 있을 정도다.
항구한 신앙과 신뢰 필요
그는 △ 성모 공경이 그리스도께 대한 공경을 감소시키거나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심 없이 형식적 신심행위 자체에 빠져 하느님 은총을 간구하고 △ 자신의 유익을 구하거나 재난을 피하기 위해 마리아에게 의지하고 기도하는 행위 등이 잘못된 신심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올바른 신심은 어린 아기가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듯 성모에게 완전하게 의지하는 자세, 역경이 닥쳐도 변하지 않는 항구한 신앙과 신뢰를 가질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성 알폰소 로드리게즈도 성모 신심을 옹호했던 이다. 그는 「마리아의 영광」이라는 책을 통해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든 은총이 거쳐 나오는 중개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구원을 위해서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느님 나라는 정의의 나라요, 성모 마리아의 나라는 자비의 왕국이라는 중세기 개념을 반복해 말했다.
더 나아가 그는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은총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성모 마리아에게 전지전능의 지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 성모 마리아를 자신과 같게 만들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는 모두 하나요, 같은 희생으로 봉헌됐다고 주장해 반발을 샀다. 이와 같은 과장은 당시 이성 지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간주된다.
요한 밥티스 반 케트비흐는 1720년 중세 많은 작가들을 인용, 성모 신심을 옹호하는 방대한 책을 펴냈다. 그는 성모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공동 구속자'라고 주장했다. 성모 마리아가 구세주를 낳았고, 우리 구원을 위해 구세주를 십자가에 바쳤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서만 죄인들에게 회개하는 새로운 마음이 주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 위해 기도하는 분
이런 주장에 대해 학자이자 도서관 직원이었던 무라토리는 성모 마리아는 여신(女神)이 아니며 죄를 사할 권한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성모 마리아가 변호자로 불리고, 공경받아야 함은 마땅하지만 죄를 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 성모 마리아의 역할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 하느님께 명령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를 위해 전구할 수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전구를 앞지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평화신문, 2010년 10월 10일, 정리=이서연 기자]
(23) 성모 발현의 의미 : 마리아 메시지, 그리스도 신앙 위한 것
하느님과의 만남이나 사적 계시와 같은 영적 체험은 가능한 것인가. 당연히 가능하다. 하느님은 인간을 초월하지만 누구에게든 드러내 보이실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어느 때나 나타나실 수 있는 분이다.
성모 발현도 신비 체험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 보이실 수 없다면 구원은 가능하지 않다. 하느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많은 기적을 체험했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자 모두 도망쳤다. 그랬던 그들이 예루살렘에 다시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적 체험이다.
제자들의 부활 체험과 같은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하느님 체험은 가능하다. 아우구스티노나 아퀴나스 성인의 신비 체험은 언제든 새롭게 되풀이될 수 있다. 이런 체험은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체험이 없다면 부활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체험이 될 수 없다. 즉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낼 때 그분을 체험할 수 있다.
성모 발현도 신비 체험 가운데 하나다. 성모 발현과 관련된 이야기는 교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헌을 보면 마리아가 승천한 후 요한 사도에게 나타났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근대에 들어 성모 마리아는 많은 곳에서 발현하셨다. 대표적 성모 발현지로는 △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 △ 1830년 프랑스 파리 △ 1858년 프랑스 루르드 △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 △ 1933년 벨기에 반뇌 등을 꼽을 수 있다.
성모 발현과 사적 계시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모님께서 발현한 장소나 메시지, 목격자들은 다양하다. 관할 주교나 교황 승인을 받은 발현이 있는 반면 승인을 받지 못한 것도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발현은, 반드시 믿어야 할 신앙의 유산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학자 스킬리벡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발현이나 사적 계시에 대한 교회의 승인은 그 역사적 진실이나 권위에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단지 조사를 통해 충분한 증거가 나왔고, 그래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발현의 신적 권위를 받아들이는 데 조심스럽게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교회는 발현이 일어난 그 장소에서 성모 마리아가 특별한 방법으로 공경을 받을 수 있다는 공식 허락 이상의 것을 주지 않는다."
사적 계시와 공적 계시 구별
성모 발현을 비롯한 사적 계시와, 그리스도를 통해 전해진 공적 계시는 구별해야 한다. 사적 계시의 옳고 그름의 근거는 공적 계시에 있다. 이미 성경에서도 거짓 예언을 주의하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사적 계시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새로운 발현이나 사적 계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난 공적 계시와 모순되는 것일 수 없고, 공적 계시를 보완해주는 것일 수도 없다. 이미 드러난 공적 계시를 특정 시대, 특정 상황에 새롭게 강조하는 것뿐이다. 성모 발현은 정신 착란과 혼동될 수도 있다. 그래서 교회는 발현을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하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우리를 중개하는 분이다. 마리아가 그리스도보다 우위일 수는 없다. 마리아의 메시지는 그리스도 신앙을 위한 것이다. 성모 발현 목격자가 성모님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된다. 발현 메시지가 교회 가르침에 위배된다면 올바른 발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발현 장소의 공적 공경과 메시지 선포는 교회가 인정한 후에만 가능하다.
교회가 인정한 성모 발현 목격자들은 교회에 순명하면서 자신을 낮춘 사람들이다. 마리아는 모든 것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뒷전에 머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활동에 협력하셨다. 목격자들도 그러해야 한다. [평화신문, 2010년 10월 17일, 정리=남정률 기자]
(24)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 : 성모 동정성, 하느님 신비, 능력 드러내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과 신적 모성, 무죄한 잉태, 성모승천 등 네 가지 교리를 이번 주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성모의 동정성에 대해 살핀다. 구약성경에서 처녀성이나 동정은 불임성과 관련돼 축복보다는 저주나 불명예, 굴욕적인 것이었다. 야곱의 아내 라헬(창세 29,31)의 경우가 그 예다. 또 길앗 사람 입타의 딸에게서 볼 수 있듯이 처녀로 죽는 일은 굉장히 슬픈 일(판관 11,37)이었다.
동정성의 교회적 의미
그러나 동정은 혼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성을 지녔다. 이삭의 아내 레베카(창세 24,16)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처녀나 불임녀는 하느님의 선택, 하느님 능력의 놀라움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레미야나 유딧, 드보라는 종교적 동기에서 동정을 지켰다. 구약에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 자체를 두고 처녀라고 불렀다. 신약에서도 동정은 혼인과 연결돼 있고,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처녀라고 표현했다. 또 동정성은 그리스도와의 혼인이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동정성의 교회적 의미는 성모 마리아에서 절정에 이른다. 결국 성모의 동정성은 구약시대에 저주였던 것이 축복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동정을 보존하면서도 하느님 아들을 탄생시킨 성모의 동정성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렵기에 오히려 하느님의 신비,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낸다. 동정으로 살아간 바오로 사도는 될 수만 있다면 사람들에게 동정으로 살아가기를 권했다(1코린 7,32-35). 오로지 하느님께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교회는 성모의 동정성에 대해 네 가지를 강조한다. △ 신체적 온전함을 보존했으며 △ 예수님 탄생 이전, 이후 성 요셉과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으며 △ 종교적 신앙 차원에서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께 온전히 속해 있었으며 △ 전적인 봉헌은 하느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모의 자발적 의지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제 문제의 관건은 예수님 출생이 남자와의 성적 관계 없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느냐, 그 출생이 어떻게 마리아의 신체적 온전함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데 있다. 우선 교회는 성서적 근거로 '젊은 여인'(이사 7,14)이라는 단어를 '동정녀'(마태 1,18-25)로 해석, 성모 마리아의 잉태를 하느님께서 몸소 보여주시는 표징으로 보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입장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인다. 두 번째로 성모 마리아의 잉태(루카 1,26-38)는 성모가 요셉 성인과 결혼하기 전 약혼시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뤄진 사건이고,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라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요한 복음사가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 탄생'을 암시하고 있다(요한 1,13).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은총
교부들은 출산 이전과 출산 시, 출산 이후 동정성으로 나눠 살핀다. 우선 출산 이전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 유스티노 성인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설명한다. 이레네오 성인도 마리아의 동정성은 교회가 물려받은 유산이며, 교회가 정통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강조한다. 출산 이후 동정성에 대해 신약성경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암시를 얻을 수는 있다. 클레멘스 성인은 외경이던 야고보 복음서를 인용하면서 성모는 평생 동정이셨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성모의 평생 동정성을 선언했다. 출산 중 동정에 대해 테르툴리아누스 교부는 불투명한 입장을 표명하지만, 오리게네스 교부는 △ 하느님은 전능하고 △ 생물 가운데 단성으로 출산하고 번식하는 경우가 있으며 △ 예수의 원죄없는 잉태가 보증되기에 성모의 출산 시 동정성은 보존된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성모의 동정성이 생물학적 차원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영적 차원에 속해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하느님의 전능성을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지닌다. 또 하느님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은총을 주셨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인간학적 차원의 뜻도 지니고, 교회가 본받아야 할 모델이라는 점에서 교회론적 의미도 있다. [평화신문, 2010년 10월 24일, 정리=오세택 기자]
(25)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어머니이기에
마리아의 신적 모성,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에 대해 살펴보자. 마리아가 혈연적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다루는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의 한 분야다.
하느님의 어머니
성경이 마리아에 관해 진술하는 이유 역시 성모에 관한 진술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가장 잘 알려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마리아가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있게 된다.
메시아의 모친에 관한 구약의 언급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을 짓밟는 메시아와 그 어머니, 새로운 시대를 열 임마누엘과 그 어머니, 메시아의 탄생지 베들레헴과 그 어머니로서의 여인의 등장 등에서 표징되고 있다.
신약에서는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자렛 사람 마리아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마리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인 한 여인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취하셨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부 신학자는 마르코복음(3,20~21)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와 형제들을 앞에 두고 군중에게 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형제ㆍ자매가 누구냐'하는 질문을 마치 성모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척받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모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는 중요한 대목이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단순히 관계가 있는 이가 아닌, 하느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신학자 필립은 마리아의 모든 특권이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하느님이 마리아에게 무죄한 잉태의 특권을 선사하고 사랑을 전적으로 성화한 것은 그분이 성자의 어머니로 합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고 언급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불렸다. 이는 마리아 '여신화'라는 염려를 낳았다. 하지만 에페소 공의회를 비롯한 기나긴 역사적 과정은 마리아가 여신이었기에 논란이 된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
마리아는 어떠한 상황에도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했다. 교부들은 이러한 신앙의 응답을 거룩함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하느님의 어머니라 칭했다. 성경에는 '주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있지만 당시 주님은 하느님에게만 쓰이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 칭호는 마리아를 여신시할 위험이 있어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3세기부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사용되고 431년 에페소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하지만 이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문제이지 마리아가 신성을 지녔다든가, 여신이라든가,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로부터 유래한다는 것과 무관하다.
하느님 어머니의 교의적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으셨고 어머니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이러한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 육화의 신비를 더욱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다. 이는 한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계획되고 선택됐음을 의미하며 소명에 적극 응답하고 따름으로써 모든 믿는 자들이 걸어가야 할 여정의 모범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 역시 그 신앙의 여정을 따라 걷고 실현해야 하기에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평화신문, 2010년 10월 31일, 정리=백영민 기자]
(26)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인정되기까지
'무염시태'로 불렸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의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의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에 의해 선포됐다. 이 교의는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논쟁이 됐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와 동정녀라는 것도 일찍이 선포됐지만 성모님의 죄없는 잉태는 1850년대까지 미뤄진 부분이다.
성모님이 죄없이 잉태됐다고 하는 것은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초기 교부들도, 성경의 관심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런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이해하고,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데 성모 마리아의 역할과 성덕이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의 성덕을 찾아낸다.
초창기 유스니토 교부는 처음으로 하와의 불순명이 성모 마리아의 순명으로 극복되는 부분을 강조한다. 이레네오 교부는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구속자, 공동 중재자라고까지 설명하기에 이른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모님의 원죄없는 잉태에 대해 주저했다. 토마스 데 아퀴노, 보나벤투라 등 중세기 대학자 성인들도 그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프란치스코회 둔스 스코투스 신학자는 "성모님이 원죄없이 잉태되셨다고 하는 사실은 성모님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구원받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구원 중재 능력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크다는 것이다.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면제될 수 있는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결코 한순간도 원죄의 지배하에 있지 않게 하실 수 있다. 둘째, 마리아를 어느 한순간만 원죄의 지배하에 있게 하실 수 있다. 셋째, 어느 시기가 지난 다음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성화하실 수 있다. 이 세 가지 가능성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실 수 있는 하느님은 과연 무엇을 선택하시겠는가 질문하고, 하느님은 가장 좋은 것을 마리아에게 이루셨음을 확신한다. 당시 유명한 중세기의 공식이 있다. "하느님은 하실 수 있었고, 원하셨으며, 따라서 하셨다"(Potuit, voluit, fecit)는 것이다.
교도권은 중립적 자세를 취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회칙을 반포해 더 이상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해 논쟁하거나 서로 단죄하지 못하게 했다. 한편 사회적 분위기는 신학적 논쟁과 달리 성모 신심이 가열되고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종교 개혁자들은 가톨릭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가톨릭의 대중적 경향을 비판했으며,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마리아의 승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18세기에 들어서 지성주의와 계몽주의는 반작용을 낳았고, 가톨릭의 대중신심은 신비주의 경향에 더 매력을 느낀다. 성모신심을 중심으로 많은 단체와 수도회가 생겨난다. 1841년 8월 22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가 한국교회의 수호자로 선포된다.
그리스도교 국가의 왕과 주교들은 교황에게 빈번히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교의로 선포해 줄 것을 요청한다. 1667년부터 1799년까지 교황 13명은 선대 교황의 입장을 따라 중립을 지킨다. 성모 축일을 장려하면서도 신앙 교의로 선포하지는 않았다. 1840년 10명의 프랑스 주교들이 공동 서한으로 그레고리오 16세에게 교의 선포를 청원한다.
마리아 신심이 깊었던 비오 9세가 1846년 교황이 된다. 그도 끊임없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의 선포를 요청받았다. 교황은 주교들에게 설문지를 보내 호의적인 답을 얻었고, 1854년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선포했다. 36항으로 구성된 회칙은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 탁월한 위치에 있음을 설명하고,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소개한다. 또 선대 교황들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신심을 격려했던 사실을 열거했다. [평화신문, 2010년 11월 7일, 정리=이지혜 기자]
(27) 성모승천 : 죽기 전에 육신과 함께 하늘에 올라
성모승천에 관한 용어를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예수 승천을 'Ascensio(상승, 오름, 올라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 승천은 'Assumptio(올림을 받음)'로 표현하며 구별하고 있다. 즉 예수 승천은 능동성을 드러내는 데 비해 성모 마리아 승천은 수동성을 드러낸다.
과거 한국교회는 이런 구별을 위해 성모 마리아 승천을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 칭했다. 이는 성모 마리아가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 승천 교의는 교황 비오 12세가 1950년 11월 1일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선언했다. 이 회칙이 선포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성모 마리아 승천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성모승천 교의는 성경이나 교부들의 확실한 증언이 결여돼 있었다.
4세기 말께 에피파니오 교부가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유일하다.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성모 마리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에피파니오 교부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 섭리를 따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적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 성모 마리아가 순교했을 가능성, 성모 마리아가 하늘에 불려 올려갔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에피파니오 교부는 당시 하느님 흠숭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구별하며, 지나친 성모 신심을 지적한 바 있다.
일찍이 성모 마리아에게 전구를 부탁하는 기도문이 존재했다. 3세기께부터 전해지는 것으로 보여지는 '천주의 성모여, 당신 보호하심에'라는 기도문이 대표적이다. 성모 마리아에게 전구를 부탁한다는 것은 성인들의 통공을 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성인들은 시복시성을 받아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 아니라 하느님 곁에 계신 분들을 의미한다. 성인들의 통공이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이가 연옥에 있는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성인들도 우리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성모 마리아께서 이미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전구하실 수 있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예루살렘 디모테오 교부는 성모 마리아 순교 가능성을 배제하고, 죽기 전에 육신과 함께 하늘에 오르셨다고 주장했다. 예루살렘 사제 헤시키오는 성모 마리아를 계약 궤와 동일시하며 하늘에 계신다고 주장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성모승천을 간접적으로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당시 권위 있는 전승은 아니지만, 겟세마니 부근에 성모 마리아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는 「피아첸자의 안토니오」라는 작품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작품은 겟세마니 부근에 성모 마리아의 집이 있었고, 집에서 하늘로 올림을 받았으며 바로 그곳에 성전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또 전설 '에우티미아카 이야기'에서도 성모 마리아 승천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무렵 성모 마리아의 생애 마지막에 관한 많은 외경들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중세 많은 신학자들은 성모승천에 호의적이었다. 성모 마리아의 무죄성과 관련해 육체 승천을 주장하기도 하고, 예수에게 육을 주신 어머니로서 예수의 육체와 유사성을 들어 승천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 예수 승천과 장래에 있을 우리 승천의 중간 단계로서 성모 마리아 승천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 세기 앞서 있었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 선포는 승천 교의를 선포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성모승천 교의는 교황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 청원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신학자들도 있었다. 대표적 학자는 교회사학자 이냐시오 될링거와 교부학자 요한 에른스트였다. 이들은 교황의 무류지권(無謬之權)과 관련해 성모승천을 교의로 선포하는 것을 반대했다.
성모승천을 지지하는 신학적 근거를 살펴보면 △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연결성 △ 신적 모성의 특권 △ 동정적 육체의 거룩함 △ 충만한 은총 등이다.
이처럼 예수가 참으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을 수 있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고, 나자렛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면 성모 마리아 승천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예수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효심을 믿고, 하느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면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을 믿을 수 있다. 아울러 하느님 은총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성모 마리아의 잉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수 부활을 믿을 수 있고, 육신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다면 성모 마리아의 승천도 믿을 수 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고, 올바른 선택을 믿을 수 있다면 성모님에게 부여된 모든 특권을 믿을 수 있다. [평화신문, 2010년 11월 14일, 정리=이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