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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강론(201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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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임신부 작성일14-09-06 09:25 조회21,1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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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 등급변경 | 조회 37 |추천 0 | 2014.09.06. 07:34 http://cafe.daum.net/likeamaria/AkDe/167 

< 연중 제23주일 >                     (2011.9.3)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를 닮아간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취미도, 심지어는 모습도 닮아간다.

진실로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취미도, 모습도, 모든 것이 점점 다 거룩해져간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저의 표현대로 하면 '따라쟁이'가 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보고 배워 말하고 행동으로 따르라고,

즉 '예수님 따라쟁이'가 되라고 보내주셨다.

 

이 세상을 살아간 모든 '성인 성녀들'은 바로 예수님 따라쟁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대로만 살아가셨다.

 

우리가 지금 9월 순교자 성월을 보내고 있지만 '순교자'들도 예수님 따라쟁이였다.

예수님이 성부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셨던 것처럼

그들도 하느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바치셨던 것이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였기 때문이었다.

진실한 사랑은 두려움이 없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하는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생명까지도 자신의 전 재산까지도, 자신의 모든 자녀까지도

사랑하는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 앞에 다 내놓을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주 좋은 본보기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다 내놓았다. 

 

반대로,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것들을 하느님을 위하여 기꺼이 내어놓지 못한다.

 

얼마 전 어떤 자매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딸처럼 무척 이뻐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의 친구의 엄마가

자신의 자녀 교육법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는데 자신의 자녀 교육법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당신이 내 아이대신 심장을 떼어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대답하자 "나는 이 아이에게 내 심장을 떼어줄 수 있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뻐하고 사랑하는 것'과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아주 좋은 이야기이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께만' 집중하고 몰입하게 된다.

하느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실 일이나 사람에게만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 남성이 어느 여성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온통 사랑하는 그 여성으로 가득 차서

그 여성 외의 다른 여성에게는 일체의 관심과 사랑과 여타의 다른 어떤 것에도

눈을 돌릴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나 '글'에서는

성경이나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나 인간의 사상이나 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여 하느님과 깊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진실로 사랑하는 부부는 아무리 처해진 환경이 어려워도

오직 사랑하는 배우자를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기쁘게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도 하느님이 시키시는 모든 일을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한 마음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모든 일을 아주 기쁘게 수행하게 된다.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그러하였다.

 

하느님이 그들에게 '지혜와 용기와 힘'을 내려 주시기에

그들의 '모든 일에 거침이 없게' 된다.

 

하느님이 '지혜'를 내려주시어 제 아무리 똑똑하다는 인간의 머리라도

도저히 하느님의 지혜를 받은 그 사람의 지혜를 따라올 수 없도록

정말 기가 막히게 지혜로 입을 열어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어 이끌어 주신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자기의 뜻'을 전하면 안 된다.

오직 자기를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뜻'만을 전해야 한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에서처럼

하느님의 뜻이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면

그 뜻을 하나도 변질됨이 없이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 뜻을 전해야 할 상대가 세상의 권력자인 '왕'이라도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것으로 죽음이 돌아와도 전해야 하는 것이 예언자의 소명인 것이다.

예언자의 입은 두려움이 없는 '하느님의 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예언자는 누구인가?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불림을 받은 것이다.

 

저와 여러분의 입이 세상에 하느님을 외쳐야 한다.

하느님을 외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이 하느님의 입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우리의 입이 하느님의 입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단 하나!

오늘 제2독서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는데,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 그것뿐이다.

 

인간을 먼저 사랑하는 것보다 하느님을 먼저 진실로 사랑하면

저절로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 있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흠뻑 젖어

어느덧 우리의 입은 '하느님의 입'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같이 성가 406번,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 깊고 크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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