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연중 제17주일(07.28)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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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7-28 16:16 조회638회본문
* 연중 제 17주일 나해
“배부른 돼지? 배고픈 소크라테스?”
오늘 복음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표징만을 중요시하는 군중들, 예수님의 사랑 깊은 마음을 읽지 못하고 현실적으로만 일을 처리하려는 제자들, 먹을 것이 모자라는 와중에도 자기 먹을 것을 내어놓은 순수한 아이, 그리고 예수님. 그 안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해로 끝나는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온 많은 군중, 배고플 때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그들이, 예수님 덕에 배부르게 되자 자기들 마음대로 힘을 행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한 물질적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한 작은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이루어낸 '마음의 기적'이었습니다. 이 기적이 주는 의미는, 예수님을 물질적인 문제의 해결사나 정치적 리더로 옹립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적, 정치적 문제들도 사랑의 마음, 순수한 마음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니 '마음 사정'에 더 힘쓰라는 교훈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중들은 병을 고쳐주는 능력, 빵 문제를 해결해주는 능력, 정치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능력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병을 고치기 위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안정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동기로 예수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왜곡하여 선전해서도 안 됩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통해 힘을 얻어 세속적인 권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일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사회와 우리교회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많은 사람처럼 오직 물질로써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평화의 조건이고, 물질적인 풍요가 자선사업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죽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아프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니며, 잘살아보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병장수나 부귀영화의 비결을 남겨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당신의 벌거벗은 몸뚱이 하나를 남기셨습니다. 즉 사랑을 남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믿습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하고 사랑받으면 평화롭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 한 사람이라도, 가난한 나라 굶주리는 어린이 한 명을 사랑으로 돌보겠다는 마음, 나의 사랑과 나의 시간을 소외된 한 사람에게 내주겠다는 '작은 마음'이 바로 평화로운 나라,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는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아멘.